용산역에서 행신역을 향하던 KTX가 멈칫거리기 시작했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나는 꽤 길어지는 이상한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게 고요했다. 창문을 통해 바라 본 밖은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만 있을 뿐 내가 탄 기차 따위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멈칫거리는 KTX는 일상과도 같은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기차는 멈췄다.
그때서야 조금 웅성거리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KTX 하차 후에 예정된 일정이 밀리기 시작했는지 곳곳에서 통화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누군가는 짜증이 가득했고 누군가는 허탈함이 가득했다. 나 또한 만나기로 했던 친구와 움직이지 않는 기차 이야기를 카카오톡으로 주고 받으며 약속 시간을 가늠하고 있었다. 갑자기 열차 내 방송이 시작됐다.
"지금 저희 열차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안내되는 방송은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냥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기차가 못 움직인지 30분은 지난 것 같은데 이 정도 일이면 바로 뉴스에 올라왔을 것 같았다.
전기 공급 문제였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물체로 인해서 열차 전기 공급이 어려워졌는데 하필 내가 탄 기차가 행신역을 향해 가는 때에 일어난 것이다. 도착시간을 예측할 수 없었다. 난감했다.
멈칫하다 이내 역도 아닌 어딘가에 정차해버린 KTX 안에서 또다시 멍해지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스포츠 뉴스를 읽다가 친구와 카카오톡을 주고 받기도 하고 창 밖을 보며 귀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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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는 본 도착 예정시간보다 1시간 가까이 넘긴 뒤에야 행신역에 도착했다. 친구와 만나기 위해 급하게 내려 지하철로 향하는데 방송국 카메라를 지나쳤다. 경보 하는 내 모습이 어딘가의 뉴스에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내게 정말 긴 여정을 안겨준 KTX는 열차 지연 보상으로 승차권 금액의 25%를 돌려주었다. 웃음이 나왔다. 시간은 내게만 귀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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